〈동맹〉은 한 남자가 원의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지상에 발이 닿자 먼 사막의 지평선을 따라 걸으며 시작한다. 원의 기호에 의해 느려진 직선 (수직-수평의) 운동은 원에 대한 직선의 억압을 예고한다. 아랑님의 지적처럼 〈동맹〉에서 저메키스는 랑에 대한 결산을 펼치고 있다. 그 중심엔 원을 압박하는 직선 벡터들이 넘친다.
맥스와 마리안은 함께 원을 그리고 싶은 인물들이다. 그러나 영화의 주된 힘은 파국을 향한 추락의 동선을 그리고 있다. 오프닝에서 유려히 내려오는 맥스를 원의 낙하산이 지탱한 것처럼, 남녀가 이루려는 원이 가파른 추락 운동의 속력을 그나마 줄이는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해 본다. 원을 제대로 그리지 못하고 느리게 떨어지는 감각은 영화에서 비행기가 유이하게 등장한 두 씬에서 모두 찾아볼 수 있다. 마리안의 파티에 폭격 당한 비행기가 어설픈 원을 반쯤 그리다 추락하는 순간의 동선은 맥스가 운행한 비행기가 착륙하는 장면과 일치한다.
이때 둘이 ‘원’을 그리고 싶다함은 굳이 랑을 의식하지 않더라도 영화에서 여러번에 걸쳐 가시화되고 있는 바다. 직접적으로 제시된 장면은 모래 폭풍 속에서 관계를 가지는 장면일 것이다. 둘이 처음으로 ‘결합’하는 장면에서 카메라가 (무척이나 파편화된 숏의 붙임으로 온전치 못한 결말을 암시하고는 있지만) 원의 움직임을 그리고 있지 않던가. 이 장면 바로 전에 등장하는 씬에도 마리안과 맥스가 원을 그리며 춤을 추는데, 이 장면은 급작스럽게 컷 전환되는 거의 유일한 장면이다.
영화가 온전한 원을 그리게 냅두지 않자, 두 인물은 그들의 욕망을 간접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드러내려는 듯 계속해 뒤를 돌아본다. 물론 이 몸짓은 온전한 상태에 항상 놓이지 못하는 그들의 상태를 대변하는 역할도 있다 (저메키스는 흔히 쓰이는 표현 - look over one’s shoulder - 를 의식하고 넣은 것 같다). 허나, 우연이라고 보기 힘든 이유는 반복된 몸짓이 영화에 걸쳐 두 인물로 하여금 필연적인 반원을 그리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순간들을 한 번 나열해보자.
1) 마리안: 맥스와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에 말없이 직감적으로 왼쪽으로 틀어 뒤를 돌아보고 맥스를 확인할때
2)맥스: 뒤를 돌아보며 인사하라는 마리안의 지시에 따라 왼쪽으로 틀어 뒤를 돌아보며 인사할 때 (자신을 예전에 심문한 나치군에게 목격됨)
3) 맥스: 방에서 나가려던 와중 인산의 화학식을 써보라는 나치 장교의 명령 때문에 오른쪽으로 돌때
4) 맥스: 문을 열려고 하자 자기 상사가 이름을 부르며 세우자 오른쪽으로 돌아 그를 확인할때
5) 맥스: 마리안이 죽기 전 사랑한다 말하기 위해 부르자 왼쪽으로 뒤를 돌아선다.
여기엔 몇 가지 규칙과 예외가 있다. 먼저, 마리안의 호명에 의해 이뤄지는 몸짓은 모두 직접적인 파국/폭력과 이어진다. 마리안이 뒤돌아 인사하라 지시하자 그에 따르는 맥스가 나치군의 눈에 발각되고, 영화의 마지막에서 두 번째 장면에 마리안이 “사랑해요 퀘벡씨 (Je t'aime, le québécois)” 라 말하며 총으로 자신의 목숨을 끊기 전에도 맥스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돌아보게 만든다. 이 순간들에 맥스는 마리안의 첫 제스처를 되풀이하려는 듯, 같은 왼쪽 반원을 그리고 있기도 하다.
이와는 반대로 마리안의 부름과 상관없이 맥스 혼자 자신의 육신을 통해 이루는 몸짓은 모두 처음 마리안이 자신을 돌아보며 그린 왼쪽 원의 반대다 (마리안이 그를 부르는 두 순간 모두 그는 그녀와 같은 몸짓을 보인다). 의도된 것처럼 맥스의 제스처가 마리안의 첫 몸짓과 반대의 동선을 그리며 오른쪽을 향한 반원을 그리고 있는 셈이다. 두 육체가 밀접해 있을때 원을 직접 그리려 하자 영화가 그를 방해하거나 끊으니, 둘은 육체가 떨어져 있을 때 원의 윤곽을 함께 그리려는 것처럼 행동함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뒤돌아 보는 제스처는 영화의 수많은 등장인물 중 이 둘만이 선보이고, 그 중에서도 한 번을 제외하면 모두 맥스에 의해 이뤄지는 몸짓이라는 점은 우연이라 보기 힘들다. 뒤도는 행위엔 항상 보는 것이 수반되기 마련이다. ‘보는 것’은 여러 인물 중 특히 맥스에게 중요한 행위다. 맥스는 끊임없이 거울/창문으로 자신과 마리안을 본다. 이때 자기 자신을 보는 순간, 혹은 카메라가 거울로 맥스를 비추는 숏에 맥스의 얼굴과 육체는 항상 온전한 정면으로 보여진다. 말하자면 맥스는 자신의 얼굴을 투명하게 카메라에 드러내는 사람이다. 그는 마리안의 연기력을 지니지 못하며 자신의 감정과 방법을 쉽게 드러내는 사람이다. 영화에서 둘이 처음으로 만난 후 이어지는 서너 장면이 맥스가 마리안에게 ‘연기’를 배우는 장면이라는 점은 이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것이다.
반면 맥스가 마리안을 거울로 바라보거나 훔쳐보는 순간들에 마리안의 얼굴은 옆모습만 보이거나 여러 거울에 비춰진 육체로 드러난다. 정체를 숨기고 ‘연기’함으로서 마리안이 얻어낸 형상 혹은 이미지에 매혹되는 맥스의 모습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은 둘이 처음으로 모임에 함께 가는 장면이다. 이때 카메라는 매력을 뽐내는 마리안의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는 맥스의 모습을 반사된 거울로 담고, 마리안의 얼굴은 여전히 옆모습만 보인다.
마리안이 거울에 온전한 얼굴을 드러내지 못하는 데도 예외는 있다. 영화의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마리안의 파티 장면에서 맥스는 동료로부터 마리안에 대한 조사와 의심이 모두 테스트가 아닐까하는 조언을 듣게 된다. 맥스는 이 의문점에 대해 여러번 상사 프랭크에게 물어보고, 끝내 프랭크가 테스트가 아니라고 말하자 (마리안에 대한 의심이 진짜라고 말해주자) 맥스는 처음으로 거울에 비춰진 마리안의 온전한 얼굴을 보게 된다.
〈동맹〉은 이야기 속에서 뒤를 돌아봐야 하는 인물들이 필연적인 함께 원을 그리는 와중, 영화가 파국을 향해 추락하며 끌어당기자 원을 그리며 떨어지는 기이한 영화다. 그렇기에 맥스가 마리안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는 두 장면 (영국군 본부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장면과 디에프 지역 교도소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숏, 나선형의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숏들과 영화의 마지막 씬이 떠오른다. 이 가슴저린 장면에서 맥스가 탈출을 꾀하며 시동을 건 비행기 프로펠러는 원운동을 그린다. 이 원운동을 저지하여 천천히 멈추도록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차의 직선 운동이다. 이 숏들은 예고된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랑적 인물의 원을 억압하는 직선적 벡터가 형상화되는 영화적인 순간이다. 이 때 날 수 없는 비행기는 영화에서 두 번에 걸쳐 등장하는 비행기의 (동일한) 동선을 상기시킨다. 맥스와 마리안은 어설픈 원을 그리며 추락하는 비행기와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언급한 영화
- 얼라이드/동맹 (Allied,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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