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스미 시게히코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스필버그는 여전히 너무 알려졌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다. 상당수의 해외 비평가들은 스필버그를 작가로서 바라보지 않는 경향이 있고, 정작 그보다 못한 여러 감독에겐 온갖 신경을 써가며 비평적 할애를 다투곤 한다. 물론 이를 감안한다고 해도 이번 작품에 대한 무관심은 너무 심하다고 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린치의 영화에서 왜 여자가 항상 우는지 궁금해하고, 이스트우드의 남자가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이유를 궁금해 하지만, 스필버그의 남자가 항상 집에 돌아오는 것은 왜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일까. 이 비평가들은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가 디지털 시네마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 '영화적 사건'이라 생각하지만 존 포드가 〈젊은 날의 링컨〉과 〈역마차〉를 한 해에 만든 것이 말이 안되는 것처럼 스필버그가 〈틴틴〉과 〈군마〉를 같은 해에 만들었다는 사실이 '영화적 사건'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BFG〉를 둘러싼 오해를 보며 트뤼포가 히치콕에 대해 미국에서 얘기한 일화가 떠올랐다. 히치콕의 〈이창〉에 대해 미국 기자가 트뤼포에게 말하길, '당신은 왜 히치콕과 이 영화를 높이 평가합니까? 혹시 당신이 뉴욕을 몰라서 그런 것 아닐런지요'. 그러자 트뤼포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고 한다; '이것은 영화에 대한 영화입니다. 난 뉴욕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영화에 대해선 알 만큼 압니다.'.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누구나 〈BFG〉가 '영화에 대한 영화'임을 쉽게 알아차리고 공감할 것이다. 이 영화에서 스필버그는 어느때보다 영화와 영화를 이루는 새로운 물성을 힘차게 긍정한다.
〈BFG〉는 꿈을 잡고 만들며 나눠주는 거인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서 '거인'이라는 단어를 제외하면 '영화 감독'의 정의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소피가 거인의 '꿈 나눠주기'에 처음으로 동행하는 장면에서 우린 이 영화가 영화에 대한 우화임을 처음 깨닫게 된다. 신비로운 안개가 아이와 어른 사이 방을 가르고 일종의 스크린이 되어 '꿈(영화)'을 영사하고, 이때 창문으로 이를 바라보는 거인과 소피의 얼굴은 관객의 자리를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꿈을 제조하는 장면은 이에 더한다. 소피의 도움으로 거인이 꿈의 요소들을 동그란 기계에 넣은 후, 이를 다른 휠로 돌리니 천장에 안개가 생기고 꿈이 보이는 모습은 영사기에 필름 릴을 돌려 스크린에 상영하는 이미지를 떠올릴 수 밖에 없게 만든다.
노골적으로 영화에 대한 우화임을 선언하는 데서 스필버그의 전략이 끝난다면 참으로 빈곤한 것일 테다 (그렇기 때문에 〈BFG〉를 논하며 영화에 대한 영화로서의 메타성만을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는 이런 선언 속 '좋은' 꿈의 역할에 대한 긍정을 제스처의 수사로 선보인다. 그 수사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 먼저 '긍정'이라는 표현과 함께 〈BFG〉를 논할 때 많이 쓰이는 '순수'라는 수식어를 언급하고 싶다. 〈BFG〉를 단순한 '순수' 환영의 우화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건 스필버그가 수많은 소설 중 로알드 달의 이야기를 가져왔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예견된 바다. 〈BFG〉는 되려 내재한 불투명함을 투명하게 만드는 영화로, 순수하지 못한 꿈의 세상에서 순수한 꿈만을 보이고픈 몸짓의 영화다. 해피엔딩의 동화같아 보이는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정작 영화 속엔 어린 아이들의 납치와 식인거인이 등장한다. 이렇게 불투명한 배경 속 빛을 밝혀주는 것은 다름 아닌 꼬마 거인의 몸짓이다.
꼬마 거인이 소피의 안경을 챙기는 행위는 〈BFG〉를 관통하는 제스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피는 눈이 그닥 좋지 않아 안경을 자주 쓰는게 정상인 아이인데,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안경을 자주 쓰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소피가 안경을 착용한 다음 순간들은 눈여겨 봐야한다.
1) 새벽에 몰래 책을 읽고 꼬마 거인을 발견해 납치당하는 장면
2) 꿈나라(Dream Country)에서 꿈의 소리를 들으려 할 때
3) 꼬마 거인과 함께 아이에게 꿈을 불어넣어줄 때
4) 꼬마 거인이 자신을 잡아줄 거라 믿으며 떨어질 때
이 장면을 제외한 수많은 상황에서 소피는 안경을 쓰지 않는다. 특히나 식인 거인들이 등장하는 악몽과도 같은 장면에 그녀는 항상 안경을 착용하지 않고 있으며, 거인들이 예상치 못한 순간 씬에 입장할 때 자신의 안경을 떨어뜨리거나 놓친다. 결국 좋은 꿈과 연관되는 장면엔 항상 안경을 쓰고, 그렇지 않은 장면에선 안경을 벗고 있는 셈이다. 이때 나쁜 꿈과 같은 씬에서 놓치고 떨어뜨린 안경을 조심스레 챙겨주고, 2번과 같이 좋은 꿈에 해당하는 경우에 안경을 건네주는 사려깊은 꼬마 거인의 제스처야 말로 먹구름을 걷혀주는 몸짓으로, 〈BFG〉의 가장 아름다운 요소다.
스필버그에게 영화는 항상 집으로 귀환하는 사람의 것으로 거울에 의해 보여졌다. 이는 그의 최근 영화들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군마〉는 떠나고 돌아오는 말의 운동 자체가 영화의 원동력이 되는 거울의 영화고, 〈링컨〉은 존 포드의 〈젊은 날의 링컨〉이 다룬 시기와 안에서 벌어지는 숏들을 보이지 않는 거울에서 바라본 영화였으며, 〈첩자들의 다리〉는 집으로 귀환하는 스파이와 변호사가 거울을 봄으로서 귀환을 예감하고, 거울이 비춰짐으로서 집에 도착함을 실감하게 만든 영화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BFG〉를 보면 저절로 의문이 드는 대목이 생긴다. 거울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면이 소피가 처음으로 궁전에 도착한 장면이라는 점. 영화의 마지막에 소피가 앞서 잃어버린 담요를 쓴 채로 궁전에서 자연스럽게 살고 있는 모습이 나오게 되고 우린 묻게 된다. 소피의 집은 어디인가? 고아원에서 시작한 영화는 모두 꿈이었는가?
그 질문에 〈BFG〉의 아름다움이 숨겨져있다. 〈BFG〉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물성이 영화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어디가 꿈이고 어디가 현실인지 육안으로 구분하기 힘든 인공적인 물성이 영화를 지배하고 있으며, 그 유일한 차이를 느끼게 만드는 것은 소피라는 아날로그 육체와 거인이라는 디지털 육체다. 그리고 이 둘을 함께 담은 주된 풍경인 거인나라(Giant Country)의 물성은 신비로운 것으로 남는다. 마치 포드의 영화에서 귀환하기 위해 거치는, 영화 자체가 사로잡힌 풍경인 모뉴먼트 밸리처럼 자이언트 컨트리의 거대한 바위와 푸른 풍경은 여기서도 귀환을 위해 꼭 거쳐야하는 풍경으로 서부극의 중심에 자리잡은 그 지평선의 '형상'과 같은 역할을 하고, 스필버그는 (말하자면 이미지 그 자체보다 이미지의 개념으로서) 이 '형상'을 디지털에 새겨 얻어냈다.
집과 귀환의 질문은 이뿐만 아니라 창 안으로 꿈을 들여다보는 행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BFG〉에서 여러번에 걸쳐 나오는 이 행위는 마치 '영화 보기'와도 같다. 그런 의미에서 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리에 놓인, 눈 앞의 같은 이미지를 거울처럼 대칭적으로 마주보게 된 〈첩자들의 다리〉의 도노번을 저절로 떠올리게 만든다. 근작에 가까워질수록 스필버그는 관객과 스크린의 필연적 간극이 불러일으키는 질문을 잊지 않는다. 항상 긍정된 스필버그적 인물의 귀환은 언젠가부터 아이러니의 향기를 듬뿍 풍기고, 관객의 자리를 되묻게한다. 헌데, 〈첩자들의 다리〉는 모든 갈등이 끝난 것으로만 보이는 마지막에 같은 숏을 반복함으로서 우리에게 결국 거리에 대한 영화였음을 다시 인지시킨다. 그렇다면 〈BFG〉는 어떠한가? 꿈과 같은 거인나라와 반대인 현실의 경계엔 항상 창문이 있었다. 창문 밖에서 창문 안으로 꿈을 넣고, 창문 밖에서 안의 꿈을 보곤 했다. 이런 경계의 유희가 중첩되는 순간에(소피가 여왕에게 꼬마 거인을 소개하는 순간) 소피가 창문 틀에 서 있음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BFG〉의 마지막 장면에서 소피는 침대에서 일어 안경을 쓰지 않은 채 창문 밖을 쳐다본다. 안경을 착용하지 않은 채 창문 밖을 보고 BFG를 부르는 그녀의 외침이 직접적으로 그녀의 말을 듣는 꼬마 거인의 숏과 연결될 때, 우린 비로소 '본다'는 행위가 전이되어 현실로 옮겨질 수 있다는 스필버그의 믿음을 엿보게 된다. 밤 런던의 아날로그적 배경으로 시작해 빛나는 아침의 디지털 얼굴로 끝나는 이 영화에서 스필버그는 디지털이야말로 관객이 얽매였던 자리에서 해방될 수 있게 만들 것이라 믿는다.
언급한 영화들:
- 내 친구 꼬마 거인 (The BFG, 2016)
- 아바타 (Avatar, 2009)
- 젊은 날의 링컨 (Young Mr. Lincoln, 1939)
- 역마차 (Stagecoach, 1939)
- 틴틴의 모험 (The Adventures of Tintin, 2011)
- 군마 (War Horse, 2011)
- 이창 (Rear Window, 1954)
- 링컨 (Lincoln, 2012)
- 첩자들의 다리 (Bridge of Spies,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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